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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샅샅이

제주도 여행전에 알아야 할 슬픈 역사, 제주 4.3

제주 4.3 추념식 행사
기회 있을 때에 꼭 찾아가 보는 제주4.3평화공원(19.04.03)

 이야기에 앞서

 제주도는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섬입니다. 서귀포 정방 폭포의 멋들어진 모습, 성산 앞바다에 우뚝 솟은 성산 일출봉이 그러하며 곶자왈의 원시림을 지날 때에 느낄 수 있는 대자연의 신령스러움조차 어느 구석 하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없습니다. 제주도를 사랑하면서 이곳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어느 날, 한국 현대사에 있어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하는 일들이 이런 아름다운 제주에서 벌어진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교과서에 매우 무미건조하게 단 몇 줄 등장하는 제주 4.3, 오늘은 제주도 여행에 앞서 알아두면 좋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또한 제주 4.3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발버둥 칠수록 늪에 깊이 빠지게 되는 치킨게임과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023년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권력의 독점화를 추진하는 현 정부의 무리수를 목격했습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하려던 검사출신 변호사의 아들이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재학 중이던 학생(제주 출신)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 친구라는 표현은 하지 않겠습니다. 학교 폭력 행위를 일삼던 그 아이와 피해자의 관계는 친구가 아닙니다. 그저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일 따름입니다. 그 가해자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인 서울대에 입학했습니다. 그 피해자는 정신적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에도 가지 못하며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가해자에게 당장은 너무나도 화가 나지만 어쩌면 이것 자체가 우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되지 않았기에, 우리 역사의 진실이 은폐되거나 조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대일항쟁기에 벌어진 끔찍한 만행들에 대하여 일본에 반성을 요구한다거나 고구려 역사의 왜곡 등 역사 문화 침탈을 자행하는 중국에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촉구합니다. 과연 우리 안의 역사조차 제대로 규명하고 진실을 후대에 전달하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역사의 실체적 진실은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길 따름입니다. 

제주 4.3의 배경

 비록 적대세력과 내통하여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일부 반민족자들이 있다고는 하나,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제주에도 민족의식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중에는 지리적 특성상 일본과 교류가 잦은 탓에 당시 식민지 한국보다 여러 방면에서 앞서던 일본에 유학한 경험을 가진 지식인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우리 독립군과 독립운동가 역시 치열하게 투쟁했던 세계 2차 대전이 끝나 일본의 압제로부터 한국도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 공산주의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이 극한 대립으로 치달아 남쪽 이승만 세력과 북쪽 김일성 세력은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민족이 분열될 즈음이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저들 멋대로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이행하여 오로지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행동만 하던 미국은 해방된 한국에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않고, 본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인물들로 한국 정부를 수립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소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강대국들의 욕심에 북쪽에는 사회주의 이념의 소비에트 연합국에 협조적인 자들이 정권을 수립하고, 침략국 일본의 협력자에서 미국의 협조자로 노선을 갈아탄 자들이 남쪽에 정권을 수립하려던 때였습니다. 이 당시, 우리 한민족의 적통이라 할 수 있는 독립운동가와 민족주의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으며 심지어 백범 김구 선생마저 안두희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일부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민족 전체가 농락당하는 암울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 4.3의 발단

 일본에서 돌아와 해방된 조국에서의 희망찬 삶을 꿈꾸던 사람들까지 제주사회는 북적이게 됩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미 군정은 도민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정책들을 강행하며 제조도민들의 불만이 고조됩니다. 제주도와 제주도민은 통일된 민족주의국가 건설을 염원하며 1947년 3월 1일 전도민적인 삼일절 기념행사를 치르고 나서 미 군정의 실정에 대한 시위를 하게 됩니다. 이에 앞서 미 군정은 경찰병력을 급파하여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시위대의 거리 행진 중에 제주 관덕정 부근에서 한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에 의해 부상을 입게 되지만 경찰은 아이를 내버려 둔 채 그대로 지나칩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대적으로 숙청되었어야 할, 일제 경찰 등 반민족 행위자들이 다시 장악한 경찰에 불만이 많았던 흥분한 군들이 이런 경찰에 거칠게 돌을 던지며 항의합니다. 이에 경찰은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생겨납니다. 이에 제주도민의 민심은 악화되었지만 미 군정은 사태 수습보다는 시위 주동자 체포 등에 주력합니다. 결국, 3월 10일 악화된 민심은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관공서는 물론이고 은행, 회사, 학교, 운수, 통신 등 기관 및 사회단체가 가담하여  민관 합동 총파업에 동참합니다. 이에 미국은 제주도를 공산주의자들의 섬이라 여기게 되고 제주도는 미 군정에 의해 일방적인 탄압의 대상이 됩니다.

제주 4.3의 과정

 미 군정은 파업에 동참한 관공서 직원들을 대거 파면합니다. 심지어 파업에 동참한 경찰들 마저 파직을 당하게 되고, 파업에 동조한 많은 이들이 검거를 피해 도외나 한라산 기슭 등지로 피신하게 됩니다. 이런 와중 1948년 1월 남한 단독 선거 안이 명백해지자 민족주의 통일 국가 건설을 염원하던 많은 이들이 격하게 반발합니다. 민족이 남과 북으로 영구히 분단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 반발의 이유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흐름에서 제주도내 남조선노동당 등 좌익계열은 단독 선거 저지를 위한 강력한 투쟁의 일환으로써 전국을 파업으로 몰고 간 '2.7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에 미 군정은 대대적인 검거작전으로 좌익계열 인사들을 체포하고, 취조하는 과정에서 붙잡힌 몇몇은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등 악화일로를 걷게 된 좌익진영은 결사 항쟁을 기획하며 무장대를 조직하여 4월 3일을 기해 제주도내 경찰서 등을 습격합니다. 정부의 제주 4.3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제주 4.3 전 기간에 걸쳐 무장세력은 500명 내외로 무기는 소총 30정을 시작으로 경찰서 습격 등으로 노획한 무기 등이었다고 합니다.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미 군정은 전라남도 경찰을 급파하는 동시, 제주 모슬포 주둔 중이던 국방경비대 9 연대장에 사태 진압을 명령했지만,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9 연대장 김익렬은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사태 수습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무시당하고 연대장에서 해임됩니다. 협상이 결렬되고 무장대는 5.10 남한 단독 선거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무장 투쟁을 강행하였지만 예정대로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어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주 내 무장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실시합니다.

 

 이른바 '초토화작전'으로  1948년 10월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간 시행함으로써 희생된 수만 해도 당시 제주 인구의 1/10에 해당될 정도로 한국전 다음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던 현대사의 비극입니다. 해안선을 따라 5킬로미터 이상까지만 활동 가능하도록 설정하여 한라산에 은거한 무장세력을 궤멸시키려는 전략으로 중산간 지대에 많은 마을의 주민들을 해안선 가까운 마을로 소개하여 주민들과 무장세력 간의 협력관계를 사전에 봉쇄하려 했습니다. 군과 경찰에 협조하는 서북청년단 등의 횡포와 패악질 등이 가세하여 제주도민의 물적, 사회적 피해는 극심하기에 이릅니다. 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입산한 자가 있다면 재판도 없이 총살당하고, 이에 반발하여 무장세력은 군경 가족들에 해를 입히는 등, 본격적인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대한민국 국군과 북한 인민군이 각자 벌였던 민간인 학살 등의 전초전적인 성격으로 이성을 잃은 이들에 의해 그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합니다.

 

 마지막 무장대원의 검거로 제주 4.3은 종결되지만 이어 벌어질, 한국 현대사에 있어 더없는 비극이자 이승만 정부의 대국민 학살극인 '예비검속'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때이지만 벌써 한집 건너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제주 4.3의 깊은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

 글의 도입부에 서귀포의 정방 폭포, 멋들어진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성산 앞바다, 훼손되지 않은 대자연의 원석인 곶자왈 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주 4.3을 알게 되고, 예비검속의 비극적인 역사를 알게 되고 보는 제주의 풍경은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정방폭포의 장쾌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빠집니다. 잔잔한 성산 앞바다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은 평화롭기만 합니다. 정방폭포의 떨어지는 폭포수는 이유도 모른 채 결박되어 폭포 아래로 떨어져야 했던 이들의 눈물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성산 앞바다의 잔잔함은 숱하게 총살당해 죽어간 이들의 피로 검붉게 물든 적막입니다. 곶자왈 구석구석 돌무더기는 미쳐가는 군경과 무장세력의 상실된 인간성을 피해 숨죽이며 몸을 숨겨야 했던 이들의 절박함입니다.

 

  불법 남침한 공산주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앞장서 자유 대한을 지켜낸 많은 제주 출신 해병들의 드높은 전공은 '나는, 나의 가족은 빨갱이가 아닙니다.'를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주 4.3 이후, 수십 년간 제주 도민들은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지에서 온 경찰에 의해 내 가족이 죽어갔기 때문에 내륙에서 온 사람들을 '육지 것'이라 욕하며 배타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민을 항변한다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야만의 역사를 겪은 이들을 대한 연민의 정입니다. 제주 3.4 추념식에 참가하여 저도 모르게 솟구친 격한 슬픔에 오열을 하자, 곁에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제 어깨를 토닥이시며 '아가, 울지 말라. 그만 울거라.' 하시며 위로를 전해주셨습니다. 정작 유족인 그녀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는 제 입장이 퍽 난처한 기억도 있습니다.

 

 제주 4.3의 발단과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난감한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무장세력은 존재했다는 거네? 그럼 빨갱이 맞네.'라는 생각도 일부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이는 명분 없는 군사반란군 수괴 전도환의 광주 주민 학살에 맞서 싸웠던 평범한 내 이웃 '광주 시민'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으로 왜곡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되, 분명한 사실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수없이 많은 '내 가족' , '내 이웃'이 있었으며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 뒤에는 이토록 비극적인 역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저 보고 즐기기보다는 한 번쯤이라도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더 나은 우리 민족,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건설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두서없이 쓰다 보니 생각만큼 글이 작성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라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단기 4356. 3월 마지막 날, 제주 4.3을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쓰는 조잡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