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일요일 아침부터 딸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레전드 박입니다. 점심으로는 어제 마트에서 산 자장면 밀키트를 조리해서 먹을까 고민하지만 역시 귀찮음이 조금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어느 평온한 일요일 아침입니다. 벌써 햇수로 4년째 접어듭니다. 재 생에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유럽의 흑사병 이후로 이런 강력한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 말입니다. 당초 짧으면 1년 정도, 길면 2~3년 정도 대차게 지구 한 바퀴를 한 번에 돌아보자 마음먹고 시작한 계획은 천운인지 불운인지 제1코스를 마치고 '일단정지' 상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홀로 즐기는 시간이 더 늘었습니다. 술도 혼자 마시고, 책 읽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밥을 먹습니다. 물가는 그야말로 성난 파도와 같이 치솟는 상황에서 멘털마저 메말라 가는 실정입니다. 그런 때에 지나간 제 여행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고 추억을 떠올리면 이 메마른 기분을 촉촉하게 적시지 않을까 하여 시작한 블로그지만 좀처럼 매일같이 글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소주를 마신다고 딱히 직업이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이야기를 하기 전에
2014년 4월 16일, 수백 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 사고와 관련된 피해자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습니다. 간혹 세월호 이야기가 지겹지도 않으냐, 세월호가 무슨 사골이냐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총체적인 국가 시스템의 부재로 얼마든지 전원 구출 할 수 있었던 '일개 해프닝'을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로 만들어 버린, 기가 막힌 조국의 현실을 비판하고, 매번 반복되는 참사에 대한 예방 대책을 강구하라고 강력하게 국가에 요구를 해도 모자란 판국에 피해자들을 2차 가해하는 자들의 한심하고 우매한 작태를 보자면 울화가 치밀어 화병이 날 지경입니다. 제가 스스로 대단히 정의로운 자여서 이런 것은 아닙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다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이태원 참사'라고 명명된, 이 역시 국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놀러 가서 죽은 아이들'이라는 경악할 만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런 말 하는 자들은 평생 1초도 쉬지 않고 일만 하는 노예의 삶을 살아서 '휴일' 또는 '휴식'의 개념이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주도를 처음 갔을 때가 인천에서 '오하마나' 호를 타고 14시간 뱃길을 달려갔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은 남다를 수가 없었습니다.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노릇, 이미 죽은 이들이 살아올 수는 없습니다. 다만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각족분들께 위로를 전합니다. 술김에 서론이 길었습니다. 다시 활기찬 분위기로 전환해 보겠습니다.
오하마나 갑판 위의 추억
사실 생애 첫 비행기도 인천-제주 노선이었습니다. 제주도에 갈 때 여권을 챙겨야 한다는 둥, 비행기 탈 때 신발을 벗고 공손하게 탑승해야 한다는 둥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웃음을 쳤지만 주변에서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니 막상 정말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 제주도에는 큰 누나네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원하던 대학에 들어간 저였지만, 학교의 엄격한 위계서열에 적응하지 못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재수를 했기 때문에 어제만 해도 학교 밖에서 만났다면 친구였을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웃기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했던 탓도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고등학생 때 학업을 내동댕이치고 지리산으로 내달렸던 것처럼,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업을 내팽개치고 제주도로 내달렸던 것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대학생이 되어서는 누구도 이런 행동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계기로 학사 경고 2번 누적, 다시 해병대로 도피를 해야 했고, 역시 '도망 끝에 천국은 없다.'라는 말을 실감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아무래도 여행은 마약에 다름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때 배에서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설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렇게 큰 배는 처음 타보았기 때문에 배 구석구석을 구경하느라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시간에는 공연도 보고 밥도 먹었습니다. 이윽고 공연마저 끝이 나니 심심하고 따분했습니다. 승무원님께 물으니 아직 한참 남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얼마나 짜증이 날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신 것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갑판 위에 나가 보았습니다. 세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것이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더 난간 쪽으로 다가가는데 느닷없이 파도가 얼굴을 철썩 때렸습니다. 혼비백산한 가운데 정신을 차리니 뭔가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낭만적으로 밤하늘의 별들과 더 가까이 가볼까 하는 마음에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을 살피다가 갑판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습니다. 이제 별들과 가장 가깝게 되었습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갑판 위에 누워있는데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라 옆을 돌아보니 어떤 남자 하나가 갑판 위에 뛰어올라 저를 보더니 그 역시 움찔하며 놀란 눈치였습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자마자 무언의 통함이 있었습니다. '아, 나 말고 낭만을 아는 자가 또 있었군.' 하며 통성명을 하고는 매점에서 맥주를 잔뜩 사와 다시 갑판 위로 뛰어올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와 술을 나눠 마셨습니다.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서해상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손수 기름을 발라 구워주시던 김에 뿌려진 소금처럼 무수히 많은 별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들을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중략)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윤동주 님의 시구처럼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했다면 로맨틱했을 분위기였겠지만 현실은 도원결의. 낭만을 아는 사내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다시 인기척이 들립니다. 그와 저는 둘 다 다시 움찔했는데 다름 아닌 승무원님 한분이 오셨습니다. 아, 적발되었습니다. 크게 혼이 나겠구나 직감하고 대역죄라도 지은 양 공손하게 처분을 기다리는데 승무원님께서는 의외로 평온하게 자리를 청하셨습니다. 주춤주춤 하며 자리에 앉자 사실은 안전상의 이유로 절대 이러시면 안 된다.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오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시면서도 승무원님 당신도 낭만을 아는 마도로스였는지 어지러이 널린 맥주캔을 보고도 별말 없이 낭만을 즐기라 하시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낭만을 즐기는 것을 나는 곁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지켜보기만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배 안에 구금 시설이 있으며, 난처한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누구라도 구금할 수 있다는 말을 넌지시 하셨습니다. 그때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압박인지 지금에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젊은 청년 둘이 낭만을 즐기는데 방해하지 않으시고 곁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해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신 승무원님께 지금에서야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주의: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청소년과 철없는 어른들은 위 행동을 함부로 따라 하다가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어디까지나 2000년 초반 감성이었고, 승무원님의 깊은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상황입니다. 지난 화에 이어 저는 가출이니 돌발행동이니 해놓고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이런 말 할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술이 얼큰하게 오를 즈음, 매서운 바닷바람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서 맥주를 마시니 흐르는 것은 콧물과 눈물이요, 몸 안에서 맥주는 어느덧 요도 끝에 매달려 다시 나가려 하기에 자리를 급하게 정리하고 내려와서 승무원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도원결의 형제님께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주변부가 시끌해서 깨어나 갑판으로 나가보니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고 저 앞에 큼지막한 육지가 보였습니다.
아, 제주도다.
생애 처음 본 제주도의 풍경은 마치 어린 시절 읽어 보았던 보물섬의 모습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 후로 제주에서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1년을 살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지금처럼 중국 자본이 제주에 대량으로 들어오지 않은 때이기 때문에, 이때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지만 그저 하루하루 산책 중에 만난 놀란 노루와 다람쥐, 까치와 까마귀를 보는 것,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제주 사투리를 들으며 듣기 평가를 해야 했던 사연, 매형이 낚시로 잡아온 고등어와 한치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던 기억 등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억이며 내적 치유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큰 누나와의 관계가 약간 서먹한 상황이지만 이 글을 빌려 그때 매형과 누나 내외에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면 생기 넘치는 눈빛과 그때를 떠올려 얼굴에 퍼지는 미소는 급하게 사라지고 어깨에 무거운 것이 들려진 양 축 쳐지지만 그렇지 않으려고 힘을 내봅니다.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희망'이라는 녀석에서 기대를 걸어봅니다. 쓸데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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