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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샅샅이

가장 처음 여행한 장소 기억하세요?(지리산 편)

한국 지리산 풍경
지리산의 어떤 풍경

안녕하세요, 레전드박입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첫 여행경험입니다. 누구나 '첫 경험'이 있습니다.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나와 세상 빛을 보았을 때의 환희 또는 공포에 의한 우렁찬 울음소리부터 두발자전거 타기를 처음 성공할 때부터 첫 키스와 그 이상의 어떠한 경험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첫 경험'을 합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은 못 하겠지만 말도 못할 생후 1년 즈음 나이에 엄마 품에 안겨 병원에서 집으로, 또는 집에서 밖으로 외출하는 것을 첫 여행이라고 정의한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지금 이 글에서의 첫 여행경험은 혼자 어디론가 훌쩍 떠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어른들이 저에게 역마살이 끼었다며 혀를 끌끌 차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 그럼 한번 따라와 보시면서 각자 첫 여행을 떠올려보시겠습니까?

일탈을 꿈꾸는 17세.

 그러니까 때는 혈기 왕성한 17세, 고등학교 2학년으로 기억합니다. 문득 일상이 쳇바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을 했기 때문에 집 학교 체육관의 반복,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똑같은 시간대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왜 이렇게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쯤 벗어나고 싶은 충동은 어느새 결심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결심이 섰을 때, 짐을 꾸려 서울역에 도착하여 공중전화로 집에 안녕을 고합니다. '당분간 여행하려 하니 그리 알고 계시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전화를 끊고 벌써 나중에 집에 돌아갔을 때 부모님께 혼날 생각과 이제 기차를 타고 떠난다는 설렘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차를 탑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단언하건대 이것은 가출이 아니라 명백히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기차는 서울역을 떠나 시골 마을로 향합니다.

모든 길은 통한다.

 우리 기차 시스템이라는 것에 의하면 새벽 시간에 도착해서 단 몇 분 만에 내려야 했기에 저는 잠이 들 수 없었습니다. 긴장하며 뜬 눈으로 도착지까지 가려고 정신 바짝 차리자고 생각했지만 정말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기차에 그대로 타고 있었습니다. 아, 이런 낭패가 또 없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니 경상남도 진주에 도착했습니다. 한 번도 스스로 이렇게 멀리까지 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 지하철처럼 원하는 역에 내리지 못하면 당연히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타고 가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마침 플랫폼에 서 있던 역무원님께 말씀드립니다. "아저씨, 구례구 역에 내렸어야 했는데 깜박 졸아버렸습니다. 여기 반대편으로 가서 타도 되나요?"라고 하자, 역무원 아저씨는 당혹스럽다는 듯이 "학생, 어디까지 가는데?"라고 물었고, 저는 지리산에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리산? 여기서 가도 됩니다. 여기서도 지리산에 올라갈 수 있어요."

역무원 아저씨의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반드시 정해진 길이 있으며, 오직 그 한 길만을 통해야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무척 단순하면서도 꽉 막힌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저 자신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듯한 큰 충격이자 깨달음이었습니다. 직선으로 가나 여기저기 잠시 경유해서 가나 어차피 본인이 원하는 목표는 그 자리에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향해 잠시 길을 잃어도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정진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가보지 않았을 뿐, 갈 수 없는 곳은 세상에 없다.

 한겨울 지리산의 추위가 매서웠습니다. 아이젠이라는 것도 몰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험한 산세와 강추위에 산길 바닥은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빙판이 되어 가뜩이나 험한 등산길에 위험을 더하여 체력이 많이 소비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제가 향했던 그 구간은 전 지리산 구간 중 가장 산세가 험한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코스였습니다. 산중 추위가 그렇게 매서운 줄도 모르고 가진 거라고는 작은 배낭 하나에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비스킷과 참치 통조림 한 개, 그리고 작은 생수병 하나뿐 이렇다 할 방한 대책도 없이 홀로 산을 오르는데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헐떡이는 호흡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내려갈까를 고민했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가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패배감에 매우 괴로워 할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무겁게 한 걸음씩 떼어 발걸음을 옮깁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서야 천왕봉 아래 있다는 '로터리 대피소' 간판이 보입니다. 너무 힘이 들어 움직일 만한 기력도 없이 산장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있습니다. 한동안 기력을 찾으려 할 때 땀이 식어 추위를 느낍니다. 대피소 관리인조차 멈칫할 정도로 그날 대피소에 머무르는 사람은 오직 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법계사라고 하여 로터리 대피소 바로 위에 있는 사찰에 들러 밥을 얻어먹습니다. 나이 지긋한 보살님께서 별 한심한 놈 다 보겠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면서도 고봉밥을 내어 주시는데, 고기반찬이 없는데도 그 맛이 담백하면서도 일품이었습니다. 할머니 보살님의 눈치를 보면서도 고맙게 밥상을 다 비우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대피소로 내려와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그때 당시는 17세, 고등학생이었기에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만 응당 그런 대접을 받았으면 좋은 일에 보태 쓰시라며 적은 돈이나마 공양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 쓰는 글에서나마 그때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얇은 담요 두 장이 전부입니다. 아래에 하나, 위에 하나를 덮고 자는 캄캄한 대피소에 오직 한 사람만이 있을 뿐, 너무 추웠습니다. 그리고 추위뿐만 아니라 대피소 외벽을 때리는 그 엄청난 소리의 바람에 덜컥 겁이 나 귀신이라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의 밤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날 우왕좌왕하며 체력을 소비했던 탓인지, 덕인지 또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일출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리산 일출이 장관이라는 것은 그 몇 년 뒤, 이제는 대학생의 신분으로 다시 찾아왔을 때나 알게 될 정도로 워낙 무지한 상태로 산에 올랐던 탓입니다. 그렇긴 해도 지리산 천왕봉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합니다. 코끝과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의 매서운 바람이 있어 오래 머무를 수조차 없었지만 내 발아래 구름 떼가 자유롭게 춤추는 운무를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지리산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