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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샅샅이

17세, 첫 배낭 여행의 종착지

(전편에 이어)

꽃동네를 가볼까

 서울역에서 덜렁 전화 한 통 남기고 집을 나선 지 이제 일주일쯤 접어든 모양입니다. 그동안 지리산에 오르며 정진의 의미를 아둔한 머리로 깨달은 바 있습니다. 세상의 끝이라는 포르투갈의 호카곶은 이때는 알지도 못했지만 대한민국의 땅 끝이라는 곳에도 가봤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지금 집으로 가도 혼나는 것은 매 한 가지이니 이왕 나온 거 한 군데 더 가보자 하는 심산으로, 마침 그나마 가진 돈도 다 바닥이 나서 어디엔가 이 한 몸 의탁을 해야 했습니다. 좋은 일도 할 겸 해서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반반 이라기보다는 숙식 제공이 된다는 말에 더 무게가 실린 얄팍한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곳이 의미하는 바가 어떠한지 전혀 모르는 세상 물정 모르는 17세 고등학상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 고작 저뿐이었다는데 대해 나이 40이 넘은 지금에 와서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꽃동네에 대해 내가 아는 몇 가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라는 꽃동네 창립 멤버 고 최귀동 님의 말씀처럼 헐벗고 굶주린 이 땅의 가장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이 마지막 안식처인 곳입니다. 그간 언론을 통해 전해 들은 꽃동네 소식을 접하면서 기회가 되면 한번 가서 일손이 되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니 가진 돈이 떨어졌지만 이대로 집으로 복귀하는 것은 뭔가 아쉽고 어설프게 일주일 허락되지 않은 여행을 감행한 것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워 아예 보름을 채울 생각으로, 또 평소 한 번쯤 봉사도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충청북도로 버스를 타고 향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한대로 생각처럼 되는 일은 없었고, 밤늦게서야 청주에 도착했고, 음성은 청주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지만 정작 꽃동네에 도착하려면 또 자정 즈음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꽃동네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며 가능하다면 일주일 정도 그곳에서 기거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지만, 그런 식으로는 어렵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일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그곳에 갔다면 그 당시 제가 과연 그곳을 감당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확신에 가까운 의문입니다. 말로만 호스피스에 대해 들었지 정말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들 주변을 괜히 기웃거리는 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저 스스로 무언의 감화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그 당시 저로서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들을 가까이 보면서 느끼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고되고 어려운 현실에 더 충격을 받았으리라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봉사라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귀한 일임을 깨닫기에는 너무 가볍고 철없는 나이였던 것 같습니다.

거짓과 선동에 대한 짧은 고찰

 또한 몇 년 전 꽃동네의 부동산 비리 등에 관한 방송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방송내용에 따른 비위 행위 관련자들에 대한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대법원의 무죄가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종교의 폐단과 악행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분명 고귀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인들이 있기에 아직  이 사회가 이나마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부분적으로만 꽃동네의 비리행위에 관한 의혹을 접했고, 그것이 머릿속 깊이 남아 이곳 꽃동네도 무죄가 확정되었다는 결론을 듣기 전까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비리와 부정 축재를 일삼는 여느 악독한 종교사기꾼에 다름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데 대해 거짓과 선동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사실관계를 아는 것은 오직 당사자들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사법부에 대한 불산으로 꽃동네 비리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쉬이 믿기 힘든 상황입니다. 무죄 판결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분명하게 진실은 그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일들로 인해 선의가 불신으로 오염되어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 상처가 나고 선행에 대해 머뭇거리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에 지원을 요청하며

 이제 오직 믿을 만한 구석은 부산에 계신 고모님께 지원 요청을 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부산행 버스를 타고 가 고모님께 전후 사정을 설명한 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혼내지 말아 주십사 읍소하는 도리 밖에 남은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고모는 철없는 조카, 거지꼴을 하고 떠돌던 조카를 맞이하여 따듯하고 맛난 밥상을 차려 주시며 서울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잘 말해놨으니까 안심하고 며칠 쉬다가 집에 가라고 말씀해 주시고 집에 갈 때 용돈까지 넉넉히 챙겨 주셨습니다. 고모 본인 가족의 삶도 팍팍한 때였는데 그런 온정을 베풀어 주셔서 정말 집에 돌아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열흘 남짓 학교도 안 가고 집을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명백하게 가출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다시 돌아올 것을 작정하고 떠난 길이기에 이 행위는 명백히 여행인 것으로 정의합니다. 지리산에서 깨달은 삶의 진리, 해남 땅끝마을에서 교회 전도사님의 온정, 음성 꽃동네에서의 계획이 무산된 일, 마지막 부산 고모님의 지원사격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간 생애 첫 배낭여행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학생 생활 기록부와 학업 등 일상을 접어두고라도(실제로 군 입대와 대학 입시에 약간의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얻은 것이 더 큰 경험이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남은 사진은 몇 장 되지도 않지만 마음에 큰 청사진이 생겼음이 분명합니다. 열흘 남짓한 이 여행을 통해 저는 17세 여느 고등학생에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한 단계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고, 부모님도 비슷한 마음에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청소년 여러분들은... 아닙니다, 제가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꿈을 크게 키우려면 세상 곳곳을 두루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고 그 실천에 여행만 한 것이 없다는 말을 끝으로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단군력 4356. 3. 생애 첫 배낭여행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