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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샅샅이

꼭 돈이 많아야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피낭, 벽화 앞에서 사진 찍는 남자.
자전거 세계일주 - 말레이시아 피낭 섬 벽화 앞(2018)

 안녕하세요, 레전드 박입니다. 이번 화에서는 세계일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누군가 세계일주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돈이 얼마나 많아야 지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소 말장난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진짜 세계일주라는 것은 땅보다 훨씬 넓은 바다를 포함해 전 지구를 한 발자국씩 발을 디뎌봐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세계일주를 해본 사람은 단언컨대 현생 인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 공식적인 국가만 해도 약 200개에 달하는데 200여 국가를 전부 돌아본 사람이 있긴 있더라도 70억 인구 중에 그 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계일주는 각자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금이 여유롭다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더 안락한 숙소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돈이 많다고 해서 정말 멋진 여행이 되리라는 것은 명백한 착각입니다. 찜통 같은 한여름 밤 어느 폐공장 부지에 텐트를 쳐놓고 자면서 생수 500ml 한 병으로 샤워를 해도 쾌적함을 느낄 수 있고, 해변가에 즐비한 고급 레스토랑 사이에 있는 야자수 아래에서 어제 사서 남겨놓은 1달러짜리 바게트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어도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후술 한 내용은 모두 필자의 경험에 의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0원 세계일주 루트 -  외국인 노동자 체험

 여행 경로 : 싱가포르-그리스-불가리아

 여행 경비 : 0원

 여행 기간 : 약 6개월, 2009. 09 ~ 2010. 03 (추정)

 

 대학 졸업 후, 우연한 기회에 대학 전공을 살려 지도진으로 초청받아 약 6개월간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살다 왔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본인이 가진 기술이나 재능에 의해 기회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겨집니다. 실제로 유럽 땅을 처음 밟아봤고,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도 당해보고, 동네 바보 같은 녀석들에게 '칭총챙' 하며 차이니스냐며 인종차별로 추정되는 조롱도 받아봤고, 나름의 전문가로서 존경도 받아봤고, 외국 카지노도 처음 가보고, 좋은 사람들과 맛 좋은 음식과 수제 와인도 마음껏 마셨던 좋은 기억이 있는 여행(비록 일 관련이지만)이었습니다.  

 300만 원 세계일주 루트 - 최소 비용 배낭여행

여행 경로 : 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라오스-베트남-중국

여행 경비 : 김해 출발, 인천 도착 비용까지 약 300만원

여행 기간 : 약 5개월, 2012. 04 ~ 2012. 09 (추정)

 

 뭔가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학자금 대출 관련 해서 매달 빠져나가는 원리금을 보고 있자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불쾌했습니다. 역대 최고 등록금 세대로서 정부의 이렇다 할 지원도 없었으며, 98년 IMF이후로 취업도 계속 어려웠다고 생각한 세대라 2023년 현재를 살아가는 소위 MZ세대의 불평이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1920 ~ 40년대 태어난 어르신들이 청년세대일 때는 악랄한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의 피바람 세대였으며, 50 ~ 60년대 태어난 어른들 세대는 배불리 먹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지나, 청년기에는 혹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많은 희생을 감내하셨기에 40대 나이에 접어든 지금의 필자로서 생각해 보건대 각자 나름의 고충이 있는 반면, 한 번이라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분명 좋은 점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의 입장을 단 한 번만이라도 헤아릴 줄 안다면 지금, 정치를 빙자한 악당들이, 국가와 민족의 민생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저들의 권력과 잇속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세대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할 기회가 많거니와 이야기가 산으로 가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학자금 잔액을 일시 상환하니 계좌에 남는 돈이 800만 원 남짓. 저는 어처구니없게도 이 돈으로 배낭여행 세계일주를 꿈꾸었습니다.

대만을 시작으로 싱가포르로 건너가 말레이시를 거쳐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을 지나고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북진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할 예정이었습니다. 리허설 삼아 지방 몇 도시와 제주도를 돌아보고, 무작정 대만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800으로 유럽까지 가려면 가능한 최소비용으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중국 입국 전까지 총 여행자금 150~200만 원을 생각해서 움직이면서도 정말 경험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은 해보자 라는 콘셉트로 여행을 계획하니 피곤하기가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훌륭한 풍경도 보고 맛난 음식도 먹어보고 나름 좋은 경험이었지만, 지나친 여행 자금에 대한 강박은 의외로 쉽게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경험을 여기서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입국해서 쿤밍에서 잠시 지친 심신을 달래고 다시 출발하려고 했으나 중국 여행 중간에 일어난, 여기서 글로 밝히기에는 다소 많은 '경험'들로 인해 다시 지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해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립 70주년으로 기억되는 만큼 대한민국 임시정부 루트를 역순으로 거쳐 상하이까지 이른 뒤, 중국 단둥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고,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정상에 오른 뒤,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렀다가 제2차 대전 동아시아의 비극인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 731 생체실험 부대 관련된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약 5개월에 이르는, 공식적인 첫 세계일주 시도는 준비 부족, 체력 안배 실패 등을 이유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천천히 풀어낼 예정입니다.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고 집에 오는 시내버스 비용까지 약 5개월에서 6개월간의 총 7~8개 국가의 여행 비용은 300만 원 남짓. 그렇게 술과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고 마셨는데도 오히려 살은 11킬로가 빠졌습니다. 물론 당시 시세에 따른 비용이 300만 원임을 밝히지만 그럼에도 녹록지 않은 여정으로, 그 많은 좋은 풍경을 보고도 다소 느낌이 안 좋은 여행으로 기억됩니다. 지나친 절약은 오히려 좋은 기억을 잊게 만든다는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500만 원 세계일주 루트 - 이번에는 자전거 여행이다.

여행 경로 : 베트남-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여행 경비 : 인천 출발, 인천 도착 비용까지 약 500만원

여행 기간 : 약 10개월, 2018.  ~ 2019. 

 

 첫 세계일주 시도 후, 몇 년을 다시 한국에서 지냈습니다. 만약, 첫 세계 일주 시도에서 의미 있는 성과나 만족이 있었다면 어른들 말씀대로 제대로 정착해서 살아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했고 적어도 칼을 뽑았는데 머쓱하게 다시 집어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먼 훗 날, 제 모습을 보았을 때에 지팡이를 짚고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후회로 점철된 쓸쓸한 노인이 떠올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첫 시도에서 문제점을 보완하고, 여행 자금도 다소 확보해 두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현지 사회에 깊숙이 개입해 보려 계획하고, 버스나 기차, 비행기보다 더 접점을 가지면서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이동수단이 필요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이 적당하다 여겨 이번에는 자전거 여행을 시도했습니다. 유럽 포르투갈, 세상의 끝에 이르러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체게바라 루트를 거쳐 미국에 흩어져 열심히 살고 있는 대학 선후배들을 만나보고 캐나다에 가서 오로라를 보고 귀국하는 장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렇게 하기에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오세아니아 대륙은 생략해야 한다는 몹쓸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당장 몇 분 뒤,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나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 일주를 끝으로 일단 귀국해서 재정비하고 다시 중앙아시아루트로 출발해 보자 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우리 생에 있어 이런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또 있을까 싶은 코로나 팬데믹이 제가 귀국해서 얼마 안 되고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차로 인도네시아를 포기하고 중국이나 몽골 또는 러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유럽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향했다면 팬데믹 기간에 정확하게 유럽 한복판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당시 아비규환이었던 유럽의 방역 상황을 미루어보았을 때 나는 과연 무사했을까 하는 등골이 서늘한 생각이 듭니다. 

 

 평소 자전거를 그렇게 즐겨 타지 않습니다만 자전거 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정해진 노선이 없이 마음 내키는 곳이면 어디든 가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몇 달에 걸쳐 정보를 수집하고 자전거 수리 기술도 익히고 자전거 여행에 대한 감을 얻기 위해 서해안 일대를 거쳐 제주에 이르기까지 자전거에 짐을 싣고 달려보았습니다. 간과한 것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할 만하다 여겨 제주에서 인천으로 이동해서 베트남에 발을 딛는 것으로 자전거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베트남의 맛나고 저렴한 음식과 술을 대하니 어디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한동안 베트남에 머물렀습니다. 그것도 2주 정도가 지나니 익숙해진 풍경이 지루해질 즈음 생각을 고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안락하고 포근한 숙소와 정갈한 음식을 내어주던 음식점을 떠나 첫날밤부터 상가 건물 입구에서 텐트를 치며 노숙을 해야 했습니다. 분명 지도상에는 도로로 표기되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자꾸 산을 올라야 했던 기억,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대단하다며 응원해 주고 여러모로 마음 써주신 현지 주민분들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 등이 있습니다. 후덥지근한 동남아시아의 모기, 벌레 많은 밤에 야외에서 텐트 하나치고 밤새 부채질하다 지쳐 잠들어야 하면서도 치안이 불안해 그마저도 깊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커다란 트럭들에 위협받으면서 도로 끄트머리에서 땀에 절어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억들, 그리고 완벽한 귀국 타이밍으로 자전거 세계일주는 성공이었다고 자평합니다. 비록 전 세계 지도의 1/5나 될까 모르겠지만 분명 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은 다시 12킬로가 빠져 귀국했습니다.

 

다음 도전은 오토바이입니다.(현재로서는 그럴 예정입니다.)

 다음 기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진행할 예정입니다. 한단게씩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입니다. 태초에 두 발이 있어 걷기 시작해서 자전거라는 도구를 처음으로 이용해 보았고, 이번에는 더 발전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국가 통관 시 문제 되는 부분들은 면밀히 검토해서 유럽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해보고 남미대륙에서 다시 오토바이를 구해 그 옛날 혁명가가 되기 이전의 한 의대생 청년이 여행했던 그 루트를 따라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그 청년은 그 여행으로 혁명가가 되었는데 과연 저는 무엇이 될까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3년째 이어진 역사서에 기록될 만한, 유럽의 흑사병 마저 우습게 여길 정도이며 현재 진행형인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특정한 국가의 초기 방역 실패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난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책임감을 느끼건 그렇지 않건 이미 우리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거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얀마 군부 정권의 미얀마 국민 학살, 팬데믹으로 촉발된 각국 경제의 위기상황은 각국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그들을 거리로 내몰아 분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도 저는 결코 굴하지 않은 예정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초전 박살로 전쟁이 비참하게 러시아의 승리로 끝맺는 비극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잘 싸워주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조국에 대한 헌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미얀마 국민들을 생각합니다. 극악한 군부 정권에 거의 맨 주먹으로 맞서는 미얀마 국민들에도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제가 가진 조악한 기술이나마 전쟁이 끝난 우크라이나가 재건해서 우뚝 서는데 보태고 싶고, 미얀마에서 끝내 시민들이 이긴다면 더 나은 미얀마를 위해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이제야 제가 왜 세계일주를 하는지 깨달은 듯싶습니다. 신이 있어 이 땅에 저를 내보내신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저는 한국에 있습니다. 모아둔 자금도 상당히 모자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꿈은 꾸는 것만으로 그치지 말고 이루어 내야겠습니다. 그것이 이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며 70억 명 중 한 명에 불과한 제가 이 세상에 그나마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글을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어지러울 수 있으나 지금까지 시도했던 세계 일주에 대해서 나열해 보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적어보았습니다. 꿈꾸는 것이 당장 내게 안락한 잠자리와 따듯한 밥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삶을 살 수 있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여러분도 꿈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