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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샅샅이

우당탕탕 암드록쵸(쵸: 호수) 가는길

여행은 과정이 전부

 어렵사리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예매해 놓고, 라싸를 떠나기만 기다리는데 온종일 동네 건달처럼 하릴없이 시간이나 때우기에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으로 룸메이트 둘과 논의를 한 결과, 차와 기사님을 섭외해 라싸 주변부 탐방을 하기로 했습니다. 암드록쵸(여기서 쵸는 호수를 의미합니다.)라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데 이곳 티베트인들이 신성시하는 호수라고 합니다. 2007년 방문기이니만큼 기억이 왜곡된 탓인지 남쵸도 갔던 것으로 기억하나 구글 지도를 살펴보니 도저히 거리가 맞지 않아 그 당시 그저 희망사항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숙소 밖을 나오니 우리 기사 형님이 환한 미소로 맞이해 줍니다. 본인도 새벽부터 일어나 운전하기 힘드셨을 텐데 인상이 매우 수더분한 좋은 분이었습니다. 차량은 도요타 SUV 랜드크루저로 그 당시 그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차량이었는데 일본 자동차라 내심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차가 출발하고 히터를 틀어놓으니 몸이 노곤해집니다. 옆을 보니 룸메이트들은 이미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차창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고, 아무리 비용을 지불하고 섭외한 기사님이라고 해도 자는 것은 운전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생각되지만 이내 저도 잠에 들고 말았습니다.
 

난로 쬐는 검은 고양이
난로 쬐는 아기 고영희 씨(출처- 필자 싸이월드 미니홈)

 아득히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날이 밝아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매우 화창하면서도  몹시 추운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자며 들어온 식당은 기사형님 본인 가족이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인지 마침 들어온 사람과 환하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저는 설탕을 버무리지 않은 튀긴 빵과 역시 간을 하지 않은 하얀 쌀죽 대접 한 사발을 아침식사로 받아 들었는데 이 맛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부드러운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목이 막힌다 싶을 때 들이마셨던 쌀죽의 담백함이란 것은, 이렇게만 먹으면 1000살은 기본값으로 끝내 신선이 될 것 같은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환상의 아침 식사를 하고 밖을 나와 보니 이곳은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당나귀로 추정되는 짐승 한 마리가 이끄는 나무 마차는 주름이 깊게 파인 할아버지 한분이 채찍을 들고 독려하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 짐승은 눈에 눈곱이 잔뜩 끼어 몹시 늙고 초라해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 '워낭소리'의 티베트 판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총총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옷매무새를 보면 모두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낡은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길가에 널브러진 말똥인지 소똥인지 주워 드는 사람들을 보며 기사님에게 왜 줍느냐 물었습니다. 매우 훌륭한 연료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식사를 했던 곳 한편에 잘 말려진 그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그것을 몇 개 난로에 집어넣고는 씩 웃어주는 형님이었습니다. (어느새 기사님이 형님이 되었습니다.)

한적한 도로, 만년설에 뒤덥인 거대한 설산이 우뚜 서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이동을 하는데 느닷없이 만년설이 뒤덮인 거대한 설산이 나옵니다. 우리 일행은 일제히 탄성을 지릅니다. 기사 형님은 어리둥절 서울 구경 온 촌놈들 보는 양 피식 웃습니다. 그때 잘 나온 사진이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조차 못 찾겠습니다.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어두었는데 2007년이면 아직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었기에 디지털카메라로 남겨두었던 그 기록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이사 몇 번을 하는 동안 통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기록이 남아있다면 기억이 더욱 생생할 텐데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입니다.

티베트 승려 기념 사진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티베트 스님들(돈, 여자, 술 탐하는 한국의 스놈 제외)

스님과의 우연한 인연

  그렇게 다시 한 마을에 도착하니 낡은 사원과 그 뒤로 나지막한 민둥산이 있어  올라가 보자 이야기하지만 룸메이트들은 중간까지 올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이곳이 고산지역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습니다. 달리는 숨을 끝까지 참아내며 끝내 정상에 다다라 아래 풍경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높은 빌딩들이 없어 흔하게 북한산에 올라 보았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룸메이트들은 힘을 내어 정상에 오르기 시작했고, 정상 즈음에 이르자 느닷없이 한자로 공안이라고 적힌 방패를 발견하며 이게 여기 왜 있는지 때아닌 토론을 벌입니다. 갖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스님 두 분과 마주칩니다. 공안 방패를 들고 있는 우리 일행을 보자 스님 한분께서 사뭇 놀라는 척하며 두 손을 번쩍 듭니다. 우리 일행은 중국 정부의 티베트 탄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고,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 소개했습니다. 스님은 알면서도 농담조로 한 행동이라며 친근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스님과 잠시 기념사진을 찍고 무사 여행을 빌어주며 만남을 마무리합니다.
 
 거의 폐허라 볼 수 있는 사원 근처에서 만난 스님의 뒷모습을 보니 느닷없이 잊힌 옛 왕국을 떠올려봅니다. 어렴풋이나마 공부했던 티베트 옛 왕국의 강성했던 시절과 중국군의 침공으로 왕국이 패망할 때 사람들의 슬프고 분통스러운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 역시 태어나고 성장하고 강했던 한때가 있으면 끝내 늙고 쇠락한다는 순리를 새삼 깨닫고 왠지 모를 숙연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사람만이 간데없네

 암드록쵸를 향해 차는 계속 달립니다. 며칠 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축복받은 몸매의 그녀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지쳐 서로 말없이 차창 너머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룸메이트들은 또 잠에 들었습니다. 기사 형님에게 손짓으로 머쓱한 웃음으로 뒤에 저 둘 잠들었다고 하자 형님이 씩 웃으며 알고 있다고 한다. 이 형님은 장족, 그러니까 티베트 현지 원주민으로 순박한 인상이었으며 자기 지갑 속의 본인 아이들 사진을 자랑하듯 보여줍니다. 아비의 마음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가 봅니다. 뭔가 또 울컥해지는 마음에 코 끝이 시림을 느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다 형님 얼굴을 번갈아보고 아이들이 아빠를 닮았다고 엄지를 내밀며 씩 웃어주니 너털웃음을 짓는 우리 기사 형님. 지금은 많이 늙으셨을 텐데 건강하게 잘 계실지 궁금합니다.

만년설 뒤덮인 설산 그리고 티베트 고원 호수 암드록쵸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고(2007)

 드넓은 평원을 지나 어느새 도로변에 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는 달리고 달려 완만한 능선을 넘는 순간, 저 멀리 반짝이며 햇살이 부서지듯 아른거리는 호수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와하고 탄성을 지르며 바라봅니다. 넋이 나갈 정도의 풍경을 글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호수는 기본적으로 상아색 또는 에메랄드 빛깔을 띠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그 호수 뒤편에 자리한 우뚝 솟은 설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것에 기원한다고 합니다. 비현실적인 만년설을 모자처럼 얹은 희미한 설산을 배경으로 눈 부신 햇살에 부서지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호수를 보자면 이곳 사람들이 왜 이 호수를 신성시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평균 해발이 3000m가 넘는 이곳 티베트고원에서도 더 높은 지대에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는 분명 신이 마시는 옹달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하루였습니다. 저녁 무렵 다시 라싸 시내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은 각자 얼마간의 돈을 모아 기사 형님께 드렸습니다. 형님은 이미 탐방 비용에 포함되어 있다면서 손사래를 치십니다. 이곳도 한국적인 정서가 통해서 한두 번 사양하는 것인지, 어린 동생들 같은 사람들에게 팁을 받기 미안해서 그러셨는지 모를 일이나 우리는 웃으며 오늘 하루 너무 고맙고 실제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니 아이들 간식이라도 사 들고 가시라 하며 기어코 손에 쥐어 드립니다. 형님은 우리들의 마음이 통했는지 씩 웃으며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이번화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