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싸를 떠나다.
약 열흘간 머물었던 이 도시 라싸를 떠나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사실 라싸에 오고 싶었던 것이 중국 교환학생 신청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고, 자신의 종교에 거룩할 정도로 진지한 티베트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은 바 깊었습니다. 또한 도시 자체가 주는 에너지에 마음으로 위로도 많이 받았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을 손수 초대한 자리에서 보여준 그 신사분의 눈물과 절규는 진짜 애국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으며, 우리 독립운동가 선배님들의 모습도 묘하게 겹쳐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올라탄 버스 승객은 모두 현지 분들이었고, 외국인은 유일하게 저 하나였습니다. 차는 굽이굽이 비포장도로를 달려갑니다. 그 흔한 전신주 하나 없는, 목가적인 풍경의 시골마을을 지납니다. 독특한 형태의 집들에서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를 보아하니 저녁준비에 여념이 없는 듯합니다.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는 석양과 그 매캐하면서도 구수한 연기의 냄새와 겹쳐 참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쑥 기사님에게 여기에서 내리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 지나 버스는 길을 재촉합니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몇 번의 검문을 거쳤는지 모르겠습니다. 검문소를 지나칠 때마다 중국 공안이 버스 위로 올라와 무언가 확인을 했습니다. 몇 번은 괜히 뜨끔해서 자는 척을 하며 가늘게 눈을 뜨고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미 라싸는 다녀오는 길이고, 열흘 지내는 동안 행색도 현지인과 다를 바 없어져 분간이 안 갈 지경이었으니 불안해할 것도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적발되어도 저는 그냥 귀국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이후, 여유롭게 검문소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잘 가던 버스가 잠시 멈추고 기사는 승객들에게 뭐라 이야기합니다. 승객들은 익숙한 듯, 주섬주섬 중요한 짐만 챙긴 채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물쭈물하는데 기사가 저에게도 내려야 된다는 손짓을 합니다. 말이 안 통하니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버스에 내려서야 상황이 이해가 갑니다. 버스는 도로를 관통하는 조그마한 냇가에 빠져 헛바퀴만 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켜보던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버스를 밀기 시작합니다. 저도 힘을 보태 버스를 뒤에서 밀었고 승객들이 의기투합하여 결국 버스를 도로로 빼내었습니다. 버스가 빠져나온 순간, 사람들은 환한 표정으로 환호합니다. 저도 같이 환호하며 손을 마주쳤습니다. 비록 옷은 더럽혀졌지만 매우 즐거운 기억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난은 고집으로부터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심하게 차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저는 문득 한 풍경이 유독 지속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천길 낭떠러지에 난 골짜기의 허리에 난 유일한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낭떠러지의 끝에는 저 멀리 히말라야 설산에서 발원한 에매랄드 빛의 강이 강하게 급류를 만들어 흐르고 있었고, 버스는 대자연 앞에 초라하게 총총이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도로의 폭이 너무나 좁아 마주쳐 차가 올 때면 버스의 바퀴가 도로 끝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집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그 와중에 버스는 골짜기를 돌 때마다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립니다. 마주쳐오는 차량과의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한 때문이겠지만 아슬아슬한 장면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신경이 날카로워질 정도였습니다.
차마고도라고 합니다. 옛 실크로드 교역길로 중국 윈난성에서 재배된 차와 티베트 초원의 말이 오고가던 수천년이나 된 교역로 중의 일부를 지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험준한 지형을 따라 형성된 조그만 길 하나가 굽이굽이 끝없이 뻗어 있어 보통은 체력이 좋은 야크들에 짐을 지어 운반해왔다고 합니다. 그런 도로를 이제는 야크대신 버스가 달리고 있습니다.
도로밖으로 차바퀴가 스칠 때마다 조마조마하며 가슴 졸이며 가던 버스가 다시 멈춥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버스에서 내려보니 경악할만한 일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산사태로 굴러 떨어진 바위덩어리들이 도로를 막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기사님의 말로는 적어도 이틀은 움직이지 못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전날 밤에도 혼자 방을 사용하면서 지불한 액수가 제법 됩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남은 차비를 환불받고 걸어서라도 가겠다고 하니 기사님과 다른 승객도 만류합니다. 대한민국 예비역 해병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제법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 앞으로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보통 고난은 고집으로부터 나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이틀 동안의 시간이 저에게는 더없는 추억이 되었음을 미리 밝히며 이번 화는 그 배경으로 마무리합니다. 길게 읽어주셨는데 일화를 소개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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