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참으로 넓은 모양입니다. 지금껏 살면서 기차 타고 가장 멀리 가본 기억이 서울에서 부산정도인데 이것은 대략 서너 시간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마저도 몸이 불편해져,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리면 항상 기지개를 켜곤 했습니다. 그런데 50시간을 기차 타고 가려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잠에 취해 잠이 오는 이상한 체험도 해보았습니다. 분명히 잠들기 전에 보았던 것들은 광야에서 풀을 뜯는 야크들 뿐이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다시 똑같은 풍경이라 열차가 같은 곳만 계속 도는 것이 아닌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경이 도시에서 들판으로 바뀌고 시시각각 날씨가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매우 우수한 한국의 치안에 비해 중국 치안은 형편없어 열차 내 도난사건 등이 종종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지고 간 물건 중에 가장 비싼 노트북과 전자사전 등을 도난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 처음으로 깨달은 점 하나가 있습니다. 여행은 최대한 가벼운 행장을 꾸려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그 뒤로 여행길에 오르면 최대한 가볍게 행장을 꾸리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이틀이 지나고 준비해 간 식량과 물이 바닥났습니다. 열차 내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은 가격도 비쌀뿐더러 구성 또한 형편없었습니다. 배고픔을 참고 최대한 버티자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너무 배가 고파 도시락 하나를 샀습니다. 당시 평균적인 볶음밥 시세의 4배에 해당하는 가격을 주고서야 도시락 하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 15년이 흐른 지금도 최악의 도시락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문화충격이라고 할 것도 있었습니다. 열차 승무원들이 오고 가며 도시락은 물론 조악한 수준의 아이들 장난감까지 판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일해서 돈 버는 것이 쉽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장난감을 사람들 앞에 소개하는 그들의 표정 너머 무언가 그들이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이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직업'이라는 것이 주는 위대함에 숙연함마저 느낍니다.
아실지 모르겠으나 티베트로 가면 갈수록 지대가 높아집니다. 티베트는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하기 때문에 평균 해발이 약 5000미터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람이 갑자기 지대가 높은 곳으로 가게 되면 고산병에 걸려 굉장히 힘들 수 있는데 열차 내에 산소를 공급하는 별도의 관이 있어 천천히 적응한 덕분에 라싸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별 탈 없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나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아, 고산병. 너마저...(카이사르 율리우스 오마주)
드디어 라싸역 플랫폼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가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여기가 티베트로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사람이 땅에 발을 딛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기차역 앞에는 택시 호객꾼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전 정보에 의해 택시기사들이 부르는 값을 그대로 지불하지 않고 어느 정도 흥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라싸 시내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택시기사도 한족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특유의 머리 장식으로 머리카락을 땋아 올린 장족 사람이 운행하는 택시를 골라 타고 이동했는데 티베트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놀란 것은 매우 웅장한 티베트 역 건물이었습니다. 어두운 밤 특유의 신비로움과 겹쳐 더욱 기억에 남았습니다.
일단 시내에서 내리기는 했는데 그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2007년 당시에는 숙박업소 애플리케이션은커녕 스마트폰마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일주 하는 이들이 즐겨본다는 론니플래닛이라는 여행안내서를 바탕으로 가장 저렴한 숙소를 미리 종이에 적어갔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정보를 종이에 적어간다는 것이 벌써 생소하게 느껴질 만큼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이 우리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듭니다. 어쩌다가 지나가는 젊은 남녀 커플을 붙잡고 이 숙소는 어떻게 가느냐 하며 묻는데 이 친구들이 외부인을 굉장히 신기하게 바라보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둘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숙소에 도착하자 주인아주머니께서 손을 모아 축복하듯이 하얀 비단수건을 제 목에 둘러주셨습니다. 지금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이들에게 있어 손님에 대한 환영의 의미로 걸쳐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실, 시내에서 커플에게 숙소 위치를 물어보았을 때 느꼈던 어떤 통증이 있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지끈하고 아득해지며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내를 헤매다 숙소를 겨우 찾아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탓도 있겠지만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방은 또 얼마나 추웠던 탓입니다. 열차에서 그렇게 잠을 잤는데도 두통과 메스꺼움이 동반한 가운데 스르륵 잠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고산병에 제대로 걸린 것인데 열차 내에 충분한 산소 공급이 이루어져서 몰랐던 것을 마치 제가 선택받은 우월한 유전자의 소유자인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극심한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구토를 밤새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괜찮다는 사전 정보가 있었기에 다음날 하루는 숙소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텨보았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더욱 극심해져 갔고, 조금씩 움직이면 괜찮을까 하여 둘째 날에는 숙소 근처를 천천히 둘러보았지만 고통은 더욱 저를 짓누르기만 했습니다. 느닷없이 콧물이 흐르기에 짜증이 났습니다.
아, 이 나이에 콧물까지 흘리는구나 하며 부끄럽게 생각하고 쓱 닦아보았는데 콧물이 아니라 선혈이 낭자한 피였습니다. 그렇게 밤새 공부를 해도 코피 한번 흘린 적이 없는 내가 갑자기 코피를 흘린다고? 어디서 들었던 바, 고산병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처음으로 이역만리땅에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흘째 되는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결국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진료를 받으러 온 현지인들은 초췌한 몰골의 낯선 외부인을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아픈 와중에 별 생각이 다 들던 차에 의사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고 손짓 발짓과 어색한 중국어로 통증을 설명하자 우리 티베트의 명의께서는 역시나 알고 있었다는 듯, 포도당으로 추정되는 주사를 처방하셨습니다. 그렇게 주사를 맞고 나자 정말 몸이 서서히 괜찮아지는 것을 느꼈고 나흘째 아침에는 두통이 없어지고 메스꺼움도 점차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주사의 가격이 가난한 교환학생의 처지에서 굉장히 비싸긴 했지만 며칠을 극심한 두통, 오한, 코피, 구토 등에 시달리며 점점 말라가는 것보다 나으며, 역시 건강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몸이 점점 괜찮아지고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티베트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또 출근해야 하니 이번 화는 여기까지. 시답잖은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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